
여행을 준비할 때는 자연스럽게 예산부터 계산하게 됩니다. 항공권, 숙소, 식비, 교통비처럼 눈에 보이는 비용이 먼저 떠오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행이 끝난 뒤에도 “내가 이번에 얼마를 썼는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저 역시 항상 그랬습니다. 그런데 여러 번 여행을 다녀오고 나니 생각이 조금 달라졌습니다. 더 아깝게 느껴졌던 것은 돈이 아니라 그냥 지나가 버린 시간이었습니다.
카드 명세서에 찍힌 숫자는 시간이 지나면 희미해지지만 여행 중 허무하게 보낸 몇 시간은 이상하게 오랫동안 기억에 남아 있었습니다. 특히 기다림이 길어졌던 순간, 이동이 예상보다 오래 걸렸던 날, 계획이 어긋났던 오후는 생각보다 선명했습니다. 그때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지만 여행을 돌아보는 순간에는 그 시간이 가장 아깝게 느껴졌습니다.
기다림이 길어질수록 하루의 흐름이 달라진다
여행지에서 줄을 서는 일은 흔합니다. 유명한 식당이나 전망대, 테마파크처럼 사람들이 몰리는 장소에는 대기 줄이 자연스럽게 생깁니다. 처음에는 그 분위기가 오히려 기대감을 키워 주기도 합니다. “이 정도면 괜찮겠지”라는 생각으로 기다리게 됩니다. 하지만 시간이 길어질수록 마음이 조금씩 바뀝니다.
배는 고파지고, 다리는 피로해지고, 뒤에 예정된 일정이 신경 쓰이기 시작합니다. 한 시간을 기다리면 그 뒤의 한 시간도 자연스럽게 밀립니다. 그 과정에서 여유는 줄어듭니다. 여행은 즐기러 온 시간인데 어느 순간 ‘기다리는 시간’을 버티는 중이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저도 꼭 가보고 싶었던 식당 앞에서 한 시간 넘게 기다린 적이 있습니다. 막상 식사를 마치고 나왔을 때 음식은 괜찮았지만 그 시간 동안 다른 관광지를 갈 수 있거나 쇼핑을 즐길 수 있었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던 것이 더 아쉽게 느껴졌습니다. 그 한 시간은 다시 되돌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줄을 서는 것이 항상 나쁜 선택은 아닙니다. 다만 그 기다림이 하루의 리듬을 무너뜨릴 정도라면 한 번은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동이 많을수록 여행은 빠르게 소모된다
여행 일정이 많을수록 이동은 늘어납니다. 지도상으로는 가까워 보여도 실제 이동은 환승과 도보를 포함하면 생각보다 길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플랫폼을 찾고 개찰구를 지나고 출구를 찾는 과정까지 더해지면 한 구간을 이동하는데 30~40분이 훌쩍 지나가기도 합니다.
예전에는 하루에 많은 장소를 보는 것이 더 알찬 여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하루가 끝났을 때 남는 건 장소의 수가 아니라 피로감이었습니다. 사진은 많이 찍었지만 각각의 장소를 충분히 느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았습니다.
특히 이동이 많았던 날은 저녁이 되면 집중력이 크게 떨어졌습니다. 같은 거리를 걸어도 풍경이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고 카페에 앉아도 쉬는 느낌이 들지 않았습니다. 그때부터 일정에 여백을 두기 시작했습니다. 한두 군데를 빼고 그 주변에서 오래 머무르는 식으로 바꾸었습니다.
이동 거리가 줄어들자 여행이 더 재밌게 느껴졌습니다. 장소 하나를 더 보는 대신 그 공간에 조금 더 머무르니 기억이 더 선명하게 남았습니다. 그 이후로는 관광지를 많이 보는 여행보다 관광지를 하루에 많이 돌아다니지 않고 여유를 가지는 여행을 더 선호하게 되었습니다.
시간이 아깝다고 느끼는 순간은 대부분 급했던 순간이었다
시간이 가장 아깝게 느껴졌던 순간은 막차 시간이 가까워졌을 때나, 예약 시간에 늦을 것 같을 때, 길을 잘못 들어 돌아가야 했던 상황이었습니다. 그런 순간에는 판단이 빨라집니다.
그럴 때는 선택의 폭이 좁아집니다. 식당을 충분히 비교하지 못하고 교통수단을 신중하게 고르지 못하고 그냥 눈앞의 선택을 하게 됩니다. 그 결정이 나쁘지는 않았더라도 나중에 돌아보면 조금 아쉽게 느껴집니다. 시간을 충분히 갖고 생각했다면 다른 선택도 있었을 것 같기 때문입니다.
여행이 끝난 뒤에는 그때 썼던 돈보다 충분히 생각하지 못했던 시간이 더 아깝게 느껴졌습니다. 돈은 일을 해서 벌 수 있지만 시간은 다시 만들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요즘은 여행 계획을 세울 때 예산만 계산하지 않습니다. 이동 시간, 대기 시간, 쉬는 시간을 함께 생각합니다. 줄이 길면 과감히 다른 선택을 하기도 하고 일정을 간단하게 합니다. 그리고 한 공간에서 조금 더 오래 머무르려고 합니다.
여러 번의 여행을 거치면서 알게 된 건 단순했습니다. 여행에서 가장 아까운 것은 예상보다 비쌌던 한 끼 식사가 아니라, 아무 생각 없이 보낸 몇 시간이었습니다. 그 사실을 뒤늦게 깨닫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