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행을 준비할 때 가장 먼저 떠올렸던 것
여행을 준비할 때 가장 먼저 했던 일은 일정표를 짜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항공권을 확인하고 숙소를 고르기 전에 이미 누군가가 찍어 둔 사진들을 먼저 찾아보고 있었습니다. SNS나 블로그에 저장해 둔 사진들을 보면 “여기는 꼭 가봐야 한다”, “실제로 보면 사진보다 더 예쁘다”라는 말들이 함께 따라붙어 있었습니다. 그 문장들을 보며 자연스럽게 한 가지 기대가 생겼습니다. ‘나도 저 장면을 직접 보면 분명 특별한 느낌을 받을 거야.’
어디를 갈지, 얼마나 이 도시에서 보낼 것인지, 그리고 어떤 풍경을 눈으로 확인하고 싶은지가 먼저 떠올랐습니다. 사진 속 장면은 어느새 여행의 목표처럼 자리 잡았고 그 장면을 직접 보는 순간이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가 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여행 중에는 계속 ‘장면’을 찾고 있었다
여행을 시작하고 며칠이 지나자 내가 풍경을 감상하고 있는지 아니면 사진으로 남길 장면을 찾고 있는지 헷갈리기 시작했습니다. 조금만 더 이동하면 더 나은 구도가 나올 것 같았고 여기서 멈추기보다는 “저쪽이 더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계속 들었습니다. 사진을 한 장 찍고 나면 ‘조금만 더 잘 찍을 수 있었을 텐데’라는 아쉬움이 남았고 그 아쉬움은 다시 다음 장소로 나를 움직이게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쉬는 시간은 자연스럽게 줄어들었습니다. 잠깐 앉아서 쉬기보다는 “조금만 더 보고 나서 쉬자”라는 선택을 반복했고 몸은 아직 괜찮은데도 하루가 끝나면 유난히 지쳐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피로는 이동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기대했던 장면을 놓치면 안 된다는 생각과 사진으로 남겨야 한다는 압박이 생각보다 많은 에너지를 쓰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실제로 여행을 다니면서 내가 즐기기 위해서 간다는 생각보다는 인터넷으로 본 사진들을 실제로 보고 사진을 찍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여행을 갔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실제로 보고 감상하는 것보다 사진이나 동영상 촬영을 더 중요하게 생각을 했을지도 모릅니다.
사진을 정리하면서 느낀 작은 이상함
여행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사진을 정리하면서 묘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사진의 수는 분명 많았지만 그날의 감정은 생각보다 또렷하지 않았습니다. 반대로 사진을 거의 찍지 않았던 시간들과 그냥 걷다가 우연히 들어간 골목이나 카페에 앉아 아무 생각 없이 창밖을 보던 순간들은 오히려 기억이 더 선명하게 남아 있었습니다.
솔직히 제가 인터넷으로 봤던 사진보다 더 잘 찍지도 못하였지만 무엇 때문인지 사진을 찍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해서 기억에 남는 여행이라고 생각이 들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막상 찍은 사진은 여행 후에 가끔씩 보지만 시간이 지나면 저의 기억속에서도 잊혀진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사진으로 남기지 않았기 때문에 기억에서 더 오래 머무는 순간도 있다는 사실이 그제야 조금 이해가 되었습니다. 사진의 양과 여행의 깊이는 항상 같은 방향으로 가지는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행을 돌아보며
여행에서 사진은 분명 중요한 요소입니다. 하지만 사진에 대한 기대가 앞서기 시작하면 여행은 현재를 사는 경험이 아니라 결과를 남기기 위한 과정이 되기 쉽습니다. 이번 여행을 돌아보며 느낀 것은 좋은 사진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순간을 어떤 상태로 지나왔는지 라는 점이었습니다. 조금 덜 찍더라도 조금 더 천천히 머무르는 시간이 결국 기억에는 더 오래 남았습니다.
다음 여행에서는 모든 장면을 기록하려 애쓰기보다 한 장소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의도적으로 만들어 보고 싶습니다. 사진은 그 다음에 따라와도 충분하다는 것을 많은 여행을 통해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